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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그 공간에 대하여

엠씨우퍼 2012. 10. 2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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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대한, 여럿 
흩어진 생각 들 중 최근 가장 와닿는 공간은
단연 길 이다.


길, 집 밖을 나서면 길 위에 서 있기 마련이다.
좁은 골목길 부터, 넓은 도로, 산길에 이르기까지.
길은 저마다의 형태와 이유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길은 자연발생적인 길들이었다.
집과 집사이의 공간은 자연스레 사람과
물자의 통행이 생기게 되었으며
그러한 공간의 합은 길이라는 형태로 남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길은
자연발생적 길과 더불어 방향과 목적성을 가진 
새로운 길이 나타나게 되었다.


일제시대, 부산에는 일본인들이 식민지 수탈의 목적으로
철도를 깔았으며, 그 철도는 수도 경성을 항해 있었다.

앞서 말한 길의 목적과 방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좋은 예로, 나는 경부선을 꼽는다.

경부선은, 철저히 식민지 수탈과 그에 수반되는
인적, 물적 자원의 수송을 목적에 두고 깔렸으며
길의방향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항, 부산항에서
수도 경성을 향하게 되었다.

이 길은 자연발생적 길과는 태생부터 다른
길이었으며, 그 목적과 방향성이 뚜렸한 길이다.

철도넘어, 해변엔 항구가 들어섰으며,
잔교부두에는 배들이 드나들었다.

따라서 철도를 중심으로, 부산의 해안가는
양분되었는데, 해안을 기준으로 철도 북쪽으로는 
식민지 부산의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이 들어섰고
철도 남쪽으로는 항구로 개발되었다.


부산은, 항구도시이면서, 철도 북쪽에 사는
사람들에게 바다를 안겨주지 않았다.
그 모습 그대로 10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부산 대부분의 바다는 출입증이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결국,  부산은 바다로 부터 차단된 형태의
항구도시가 되고 말았다.


사례 1.

2004년, 나는 중앙동에서 문서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었던 적이 있다.
당시 높은건물에 사무실에 볼 일이있어 높은건물 고층에
들렀다가, 사뭇 놀라운 풍경을 마딱드리게 되었다.

건물아래로 부산역과 경부선 철도가 보였으며
부두로로 통칭되는 충장로가 보였다.
철도와 충장로(부두로)를 중심에 두고 좌 우의 세상이
전혀 딴판이었던 것이다.

앞서 말한 철도 북쪽이었던 좌측에는 부산역 광장과 중앙로
그리고 수정산 일대 들어선 산동네와 산복도로
그리고 업무지구가 길게 들어서 있었으며
철도 남쪽이었던 우측에는 산업도로의 성격이 강한
충장로(부두로)와 부산항 1~5부두가 들어서 있었다.


철도를 가운데 두고 두 모습은 전혀 다른 형태의 구조를
띄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갸우뚱 거렸던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처음으로 풍경에 의구심을 가지고 카메라를 들었던 때다.


길은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목적과 방향성에 위배되거나 부합되지 않는것들은
철저하게 배재된다.

식민지 수탈에 필요한 철도를 놓으면서, 당시 부산에
살던 사람들에게 수변공원과 같은 워터프런트를 제공하지
않는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군더더기 없는 철도와 도로 가설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일 이었을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식민지 수탈을 목적으로 할
항구와, 철도가 필요했을 뿐이다.

 

사례2.

광안대교는 국비와 시비를 합쳐 총 7천억원의 막대한
공사비가 들어간 대 공사였다.
광안리 앞바다를 디귿자로 가로지르는 기형적 형태의 이 다리는
주 진출입로가 부산남구 용호동과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방향으로
설계 되어 있다.

명목상 이 다리는 광안리 일대의 상습적인 지정체를 해소하고
부산의 해안 순환로의 일부로 설계 시공되었다고 한다.

좀더, 직접적으로 언급하면, 이 다리는 광안대교, 북항대교
남항대교를 이어 을숙도 대교를 거쳐 부산신항으로 이어지는
부산의 물류 순환도로의 성격이 강한 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시민들의 수요가 더 많은 부경대 경성대, 황령터널방향의
진출입로가 메인 진출입로가 아닌 부 진출입로로 설계 되어 있으며
해운대쪽, 주 진출입로는 옛 수영비행장 측면 현재의 센텀시티를
우측에 둔 형태로 길이 놓여있다.

정작 해운대로 직접 들어가는 진출입로는 별도의 차선을 분리하여
보조 진출입로를 이용해야만 그 지역으로 이동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 길의 목적은 부산의 물류순환로의 일부이며
그 방향성은 남구 용호동을 가로질러 신선대를 지나
북항대교로 이어지는 방향과, 해운대 해수욕장 방향이 아닌
원동IC방면, 경부고속도로 방면으로 놓여 져 있는것이다.

 


사례3.

최근 영도구에는 북항대교와 남항대교를 잇는 연결구간의
지하화를 두고 팽팽한 여론이 있어왔다.
앞서 말한 길의 목적과 방향성은 길의 형태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은 남항대교의 모양에서 찾을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애초부터 이 두 다리의 연결구간은
지하화 할 생각이 없었다.
남항대교 영도쪽 진출입로의 모양새가 그것을 말해 주는데
이 다리의 진 출입로는 큰 도로의 줄기가 영도에 도착하여
양갈래 좁은길로 분화되며, 중앙의 큰 도로는 빈공간으로
바뀌며, 사라진다.

차들은 본디 달리던 큰길을 포기하고 작고 협소한 길로
들어서야, 영도에 내려 올 수 있게 된다.
너무나 당연한 나들목 형태다.

메인도로는 중앙으로 쭉 이어져 북항대교와 연결 될 것이다.
고가도로를 그대로 유지 한체로

이미 이 연결구간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교각 공사가 현재
진행중이다.

길은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또 이것이 길의 형태에
영향을 주는데, 그 좋은 예가 지금 건설중인
이 남항대교와 북항대교간 접속교량 공사다.

목적과 방향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는 교량주변
영도 구민들은 집앞에 큰 구조물을 평생 바라보고 살수 밖에
없게 되었다.

길의 목적 자체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부분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류순환에 대한 목적은, 신항으로 이어지는 방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 목적에 맞게 도로를 놓고, 방향을 만들어 가는것이다.

해당지역 주민들의 처우는, 길의 목적에도 방향성에도 
일치하는 점이 전혀 없다.


이들은 길을 곁에두고 길에서 단절되고, 시야에서 차단되었다.
길의 여럿 의미와 기능중에 소통과 이동, 순환, 어느것 하나에도
이들에게 배려된 것은 없다.

허울뿐인 친환경적인 고가도로!
라는 구호와 조감도만 있을 뿐이다.

어디보랴, 교량아래 삶이 쾌적한곳이 있는지를.

 

사례4.

매축지 마을은, 일본인이 
식민지시절, 부산중앙동 중부경찰서 자리에 위치했던
"쌍산"을  착평하여, 부산앞바다를 매립하고
수정산 인근의 언덕과 자성대 인근의 언덕을 깍아
바다를 매립 매축한 곳에 들어선 마을이다.

덧붙여 지금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있던 자리는
용두산의 꼬리, 용미산이 있었으며, 일제는 이 용미산을 착평하여
자갈치 일대를 매립한다.

매축지마을은, 길이란 길을 모조리 집대성 한 곳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곁으로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며, 자성 고가교가 지나가며
충장로가 곁에서 지나고 있다.
수정산 터널로 이어지는 고가도로가 하늘위를 가르며
바닷길이 시작되는 5부두가 인근에 있다.

길과 길, 큰길이란 큰 길은 매축지 마을을 모조리 애워싼
길곁 마을중의 마을이 매축지 마을이다.

하지만, 도심의 섬처럼 고립된 이 마을은
소통과 이동 순환의 기능을 하는  길에 둘러쌓여 있으면서도
길위에 고립된 모순된 현실을 드러내는 마을이 되었다,

앞서 말한 길의 목적과 방향성에 철저히 배재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길을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길에서 단절된 모순.
길을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길로써 얻을수 있는 순환과 이동으로부터
차단된 마을
길을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길때문에 시야에서 사라진 마을.

그것이 지금의 매축지 마을이다.

 

사례5.

부산 제1도시고속도로 번영로는
부산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르는 물류도로이며 순환도로다.
이 도로가 지나는 지역은 넓고, 이 도로로 이동할 수 있는 곳도 많다.

번영로를 남에서 북쪽으로 이용한다고 가정했을때를 단순한 예로 들어 보면
광안터널을 지나, 수영터널을 빠져나오면, 1.1km에 이는 길고 긴
도로가 시야에 나타난다, 활처럼 아래로 푹 꺼지며, 길게 뻗은 이 도로는
실제로 고가도로다.

번영로의 목적과, 방향성 때문에, 다리 아래의 마을이 된 이곳이 차단되고 말았다.
번영로의 이 구간 아래. 망미동 일대는 다리가 만들어 놓은 그늘과
공간의 단절성 때문에, 시간이 정지 한것 처럼,  딱딱하고 변화가 적다, 
마치 도심의 굳은살 처럼.

나는 이 구간 아래로 내려 가 보고, 매우 긴 구간에 걸쳐 도로와 함께
늘어선 큰 마을을 보고 놀랐다.
도로를 이용할 땐, 내가 다니는 이 땅밑에 마을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미지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것으 그 장소가 특별한 개발의지나, 개선의 노력없이
그냥 그대로 시간과 함께 방치되어 낙후 되어 가고 있더라는 점이다.


길이 가지고 있은 목적성과 방향성은
그 목적성과 방향성에 부합되지 않는것들을 단절 시키기도 한다.

부산사람들을, 대부분의 바다로부터 단절시킨, 충장로와 경부선 철도.
북쪽 영도해안가 사람들을 시야에서 차단시킬 북항대교 남항대교 연결교량.
길이란 길을 모조리 곁에 두고도 고립되고 시야에서 사라진 매축지 마을.
번영로의 목적과 방향성을 지키기위해 도로에 깔려버린 망미동일대.


이런 예들을 직접 느끼고 확인하면서
길은, 소통과 순환, 이동의 순 기능이외에
단절과 차단이라는 모순점이 동시에 있는 존재라는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모순점은, 길의 목적성과 방향성에서 기인하며
그 목적과 방향성은, 실제 길 주변에 있는 목소리들이 아닌
돈과, 권력, 그 길로 말미암아 목적을 달성해야만 하는
목소리들에 의해 설계되고 놓인다는 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우리는 길의 목적때문에, 우리집의 대문앞이 길로 차단되는 이유를, 
거국적으로 감내 해야만 하고, 길의 방향성 때문에, 
삶터를 잃기도하며, 발전과 개발의 시선에서 차단되고,
이동성을 잃고 고립되기도 한다.
그리고 길의 순 기능을 이용할 수 없는 지경에도 이르게도 된다.


집앞을 나서면 길이다.

그 길이 막연히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경도와 강도를 가진
물리적 땅덩어리가 아니라, 목적과 방향성을 요하는 힘의 표출이
길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나타나 있는것이다.

그 방향과 목적이
설령 내 생활에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영향을 주더라도
길은 그렇게 놓이게 된다.

그 목적과 방향성을 요하는 힘이 
나보다 더 크고 거대하다면,
나로써는 어쩔수 없게 되는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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